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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르제이의 스타일라이프⑦] "엄마는 왜 '몸빼'를 사랑했을까?" 홈웨어에 대한 혜정의 생각

2020-02-17 15:32:35

“관점을 바꾸면 생각이 바뀌고 생각이 바뀌면 모든 것이 다르게 보일 수 있습니다”

3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저는 엄마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자랐습니다. 아버지가 출근하시고 언니와 오빠가 학교에 가면 엄마와 단 둘이 시간을 보낼 일이 많았는데요. 저는 유일한 친구이자 선생님이었던 엄마를 늘 흉내 내는 ‘따라쟁이’였어요. 화장대에 앉아 엄마처럼 화장하는 시늉을 하고 맞지도 않는 엄마 옷을 입고 엄마처럼 차 마시는 흉내를 내던 철부지 막내딸이었습니다.

어릴 적 저의 최대 관심사는 ‘엄마의 옷차림’이었습니다. 어머니가 차림에 신경을 쓴 날은 어김없이 같이 외출할 일이 생겼거든요.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는 언제나 제가 좋아하는 마론 인형과 인형 옷을 선물 받고 돌아왔어요.

꼭 선물이 아니더라도 예쁘게 입고 외출하는 엄마가 좋았어요. 평소보다 신경 써서 차려입은 모습이 그림책에서 본 ‘왕비님’ 같았거든요. 우아하고 아름다운 엄마와 손을 잡고 걸으면 왠지 제 어깨가 으쓱해졌습니다. ‘우리 엄마 예쁘지!’ 마구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었죠.

제 기억 속의 엄마는 수수한 홈웨어를 즐겨 입으셨어요. 롱치마에 니트, 티셔츠에 헐렁한 고무줄 바지처럼 가볍고 착용감이 편한 옷이 대부분이었어요. 여기에 단정한 외투 하나를 걸치면 동네마트 패션이 됐고 옅은 화장을 더하면 제 유치원 등‧하원 패션이 되곤 했어요.

전업주부로 평생을 사신 덕분에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다보니 자연스레 저도 엄마의 홈웨어가 친숙했어요. 그 중 얇은 고무줄로 허리를 잡은 헐렁한 ‘몸빼’는 아직도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장하는 날이나 이사, 대청소 등 집안일이 많은 날이면 엄마는 넉넉한 고무줄 바지를 입으셨어요. 일명 ‘몸빼바지’는 펑퍼짐해 보이는 데다 촌스럽기까지 했지만 집안일이 많은 날은 작업복처럼 고무줄 바지를 애용하셨던 것 같아요. 당시에 저는 그런 엄마의 옷차림을 유심히 관찰하면서, ‘엄마는 왜 할머니 바지를 좋아할까?’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제가 지금은 그 시절 친정엄마만큼 나이를 먹고 주부로 살아보니 ‘엄마의 마음’을 알 것 같습니다. 아무리 예쁘게 입고 싶어도 육아와 가사 노동 앞에서는 자신을 돌볼 수 없는 게 엄마고 아내더라고요.

친정엄마의 홈웨어는 ‘스타일’이 아니라 ‘생활’이었던 거예요. 중요한 약속이 있는 날 멋지게 차려 입은 엄마는 ‘여자’였지만 세 아이를 돌보며 가정을 돌보는 엄마는 ‘주부’라는 본업에 충실한 ‘아내이자 어머니’였던 겁니다. 엄마의 ‘몸빼’는 전쟁에 나가는 장수의 갑옷처럼 살림을 가꾸는 엄마의 ‘전투복’이었던 셈이죠.

“가장 훌륭한 뮤즈는 내 안에 살아있는 어린아이마음이다”

‘유니콘 벨르제이’의 옷에는 종일 엄마를 관찰하던 ‘꼬마 김혜정’의 시선이 녹아 있습니다. 엄마를 아름답게 만들었던 옷부터 평소 엄마가 즐겨 입으셨던 편안한 옷까지, 아이의 눈으로 보고 느꼈던 모든 것들을 제 옷에 담고자 합니다.

이제는 40대 중반의 주부가 된 저 자신은 물론 어릴 적 우리 엄마에게 입혀 드리고 싶은 ‘예쁘고 편안한 옷’을 만들고 싶어요. ‘엄마도 여자였다’라는 뒤늦은 깨달음을 교훈 삼아 세상의 모든 엄마들이 ‘기분 좋게 입을 수 있는 멋지고 실용적인 스타일로 찾아 뵐게요.

우리 인생은 노력한 만큼 가치 있게 빛이 난다고 하잖아요. 완벽하지 않아도 성공적이지 않아도 할 수 없습니다. 저는 단지 숨을 쉬듯 꿈을 그리고 제 온 마음을 다해 정성을 쏟고자 합니다. 엄마의 몸빼를 더 예쁘게 만들어 드리고 싶은 딸의 마음처럼요.

오늘도 여자의 일상을 함께 같이 하는 ‘유니콘 벨르제이’ 김혜정이었습니다.


패션&뷰티 크리에이터 김혜정 (벨르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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