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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제너럴 아이디어 최범석 디자이너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

2017-09-19 15:15:31

[허젬마 기자] 여기 한 남자가 있다. 그는 열 일곱 살에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스무 살에 디자이너로 입문한 후 스물 일곱살에 첫 서울 컬렉션 무대에 섰다. 서른 넘어 처음 선 뉴욕 컬렉션은 현재까지 통산 17번의 무대를 오르며 한국인 디자이너로서는 최다 기록을 세웠다. 국내는 물론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며 남성 디자이너 브랜드 제너럴 아이디어와 리빙 브랜드 더블유룸드레스의 대표를 맡고 있는 최범석 디자이너의 이야기다.

정규 미술 교육을 받기는 커녕 변변한 대학 졸업장 하나 없던 그는 어떻게 이 신화의 주인공이 되었을까. 그는 말한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안 되면 될 때까지 문을 두드리라고.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거쳐왔던 모든 아픔과 고통은 자신의 인생을 단단하게 지탱해주는 뿌리가 되었다고 말이다. 뿌리 깊은 나무는 흔들리지 않는다고 했던가. 최범석 디자이너에게서 한 그루의 크고 단단한 나무의 모습이 엿보인다.

Q. 화보소감

비록 피사체는 별로였지만(웃음) 팀워크가 워낙 좋아서 쉽게 쉽게 잘 찍은 것 같다.

Q. 사진과 워낙 밀접한 일을 하는데도 카메라 앞에 서는 게 어색한가 보다

어색하다. 참 많이 찍어도 보고 찍혀도 봤는데 카메라 앞에 서게 되면 항상 왠지 쑥스럽다. 오히려 영상 카메라는 편하다. 내 모습을 그냥 자연스럽게 드러내면 되니까. 그런데 사진은 멈춰있는 찰나에 잘 찍혀야 하기 때문에 작가와의 호흡도 중요하다 보니 더 어려운 것 같다.

Q. 근황

지난 7월에는 17번째로 뉴욕 컬렉션에 다녀왔고 현재 9월 30일 파리 컬렉션 쇼를 앞두고 있다. 그리고 새로 런칭한 리빙 브랜드 ‘더블유 드레스룸’이 잘 되고 있어서 바쁜 상황이다.

Q. 18 S/S 소개 부탁드린다

어느 순간부터 옷을 만들 때 단순히 예쁜 옷을 만든다거나 컨셉츄얼한 디자인에 힘을 쓰기보다는 영화를 만드는 것처럼 사회 전반적인 현상들에 대한 메시지를 담는 것에 주안을 두고 있다. 이번 시즌 같은 경우는 ‘포노 사피엔스’라는 주제로 해서 요즘 현대인들 간에 대화가 잘 없고 기껏해야 SNS를 통해 소통하는 것에 대한 메시지를 히피적인 느낌으로 표현했다.

‘포모 사피엔스’는 최근 유럽에서 유행하는 신조어로 스마트폰 없이 생활하는 것을 힘들어하는 세대를 이르는데, 현대인 간의 소통 부재가 커다란 과제로 떠오른 현대적인 시대상황과 대조적으로 1970년대 기계나 문명이 발달하기 전 오로지 서로가 나누는 대화와 우리의 삶이 중요하던 그런 히피 문화를 현대로 끌여들어서 ‘포노 사피엔스’ 주제에 맞게 재해석했다.

Q. 뉴욕 컬렉션에서의 반응

평소와는 다르게 이번 시즌에는 히피라는 문화에 걸맞게 컬러를 좀 많이 사용했는데 그게 반응이 좋더라. 또 여성복도 좀 같이 해봤는데 그것도 반응이 좋았고.

Q. 이 자리에 오기까지 걸어왔던 과정을 보면 마치 한 편의 신화에 가깝다

열 다섯 살때부터 부모님의 돈을 받지 않고 생활했다. 그때부터 각종 아르바이트를 해봤는데 처음으로 장사라는 걸 해본 건 열 일곱 살 때 자퇴를 한 후에 리어카로 시작했던 떡볶이&오뎅 장사다. 그런데 음식 장사에 영 흥미를 못 느껴서 18살에 광장시장에 있는 원단시장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돈을 조금씩 벌면서 월급만 타면 그 돈으로 광장시장에 있는 구제옷들을 조금씩 사들였지. 그리고 그 옷을 가지고 홍대로 가서 노점으로 옷을 팔았는데 잘 안 돼서 망했다. 그 이후에는 대구에 가서 해보기도 하고 부산에 가서 해보기도 하면서 다시 돈을 조금씩 모았다.
그렇게 모은 돈으로 다시 의정부에 있는 한 먹자골목에 옷가게를 냈는데 그게 좀 잘 되더라. 그러다 보니 주변에 전부 음식상점이었던 골목이 어느새 보새 옷가게가 되어있었는데 어느 날 보니 다른 옷가게 사람들이 나와 똑같은 옷을 떼어다 더 싼 가격으로 팔고 있더라. 이러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그때부터 옷을 직접 디자인하기 시작했는데 반응이 좋았다. 주변에서도 옷 한번 제대로 만들어 보는 게 어떻겠냐고 권유를 하기도 하고. 그렇게 의정부 가게를 정리하고 동대문으로 들어가 옷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때 나이가 스무 살이었지.

Q. 그럼 정말 정식적인 미술 교육은 전혀 받지 않은 건가?

그렇다. 사실 미술적 재능이라곤 정말 1도 없었다. 그런데 디자인을 하기 시작하면서 미술을 배우긴 배워야겠고 해서 혼자 생각한 게 잡지를 사다가 그 위에 기름종이를 올려놓고 따라 그리며 연습하는 방법이었다. 그렇게 그림 그리는 방법을 스스로 조금씩 터득해나갔다.

Q.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 디자이너로서는 뉴욕 컬렉션 최다 기록 보유자다. 패션업계처럼 특히나 자존심 센 동네에서 이 자리에 오기까지 수많은 편견과 선입견을 받아왔을 것 같은데

엄청 많았다. 내가 처음 디자이너로서 이름을 알릴 때만 하더라도 유학생 출신이 아닌 사람은 쇼에 서기도 힘든 시대였다. 서울컬렉션 같은 곳은 더더군다나. 그런데 내가 느낀 건 계속 노크를 하면 결국엔 되더라는 것이다. 거절 당하면 또 하고 거절 당하면 또 하고. 콤플렉스라는 건 표현하지 않으면 계속해서 쌓이는 거지 않나. 그래서 보통 사람들은 자신의 콤플렉스를 노출시키고 싶지 않은 마음에 더 나아갈 수 있음에도 주저하고 망설이는 경우가 많은데 나는 거절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것 같다.

내가 동대문에서 처음 점포를 열었던 게 스물 한 살인데 처음에 경험도 없는 생 초보인 나에게 누가 자리를 주려고 했겠나. 자리를 줄 수 없다는 상가번영회를 정말 한달 내내 찾아갔다. 하루도 빼놓지 않고. 그렇게 두 달쯤 찾아갔나. 결국엔 해주더라. 보통 한 두 번 시도하다 거절 당하면 돌아서지 않나. 나는 허락을 해줄 때까지 계속해서 두드리는 사람이었다.

서울 컬렉션도 마찬가지다. 쟁쟁한 실력을 가진 사람들만도 이만큼인데 대학 졸업장도 없는 나에게 어떻게 자리를 주냐며 단칼에 거절했었다. 그때도 정말 매일을 찾아갔다. 와인이나 먹을 거리 하나씩 들고(웃음). 뉴욕 컬렉션도 똑같다. 내 발로 직접 찾아가 두드린 결과로 얻어낸 기회였다. 돌이켜보면 나는 항상 뭔가를 처음 시도할 때 번번이 잘 안됐었다. 그런데 그게 좋은 거더라. 실패라는 경험의 데이터가 쌓이면 그게 훗날 큰 자산이 된다.


Q. 처음 서울 컬렉션에 섰던 나이가?

스물 일곱 살이었다.

Q. 뉴욕 컬렉션 최다 기록 보유 소유자

처음 뉴욕 컬렉션에 서게 된다는 내 소식을 들은 선배들은 네가 무슨 쇼냐며 무시했었다. 그리고 실제로 뉴욕에서도 컬렉션에 대한 반응이 별로 없었고. 그래도 이왕에 시작한 거 다섯 번만 채우자 싶었다. 다섯 번을 채운 후에는 열 번은 채워보자 했던 건데 10번이 넘어가니까 슬슬 반응이 조금씩 생기더라. 누구나 처음에는 잘 될 거라는 희망으로 시작을 한다. 그런데 사실 처음부터 잘 되기란 정말 어려운 거다. 나 역시 처음에는 미국인들의 콧대를 눌러주겠다는 심정으로 컬렉션을 시작했는데(웃음), 막상 그 무대에 서 보니 내가 너무 한없이 작더라.

Q. 실패에 대한 경험

물론 나도 이 자리에 오기까지 정말 힘들고 험난했던 과정을 많이 겪었다. 그런데 그 아픔과 고통의 경험들은 내 인생에 뿌리가 됐다. 그 뿌리 덕분에 내가 넘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걸 알기에 나에겐 실패가 좌절로 다가오지 않는다.

언젠가 어떤 후배가 나에게 그러더라. 형은 왜 이렇게 맛있는 것만 먹고 다니냐고. 그래서 내가 그랬다. 맛 없는 걸 너무 많이 먹고 자랐더니 이제는 맛있는 걸 먹고 싶다고. 비슷한 일화로 동대문에서 일하던 시절 같이 일하던 주변 사람들이 나에게 어떻게 그렇게 옷을 예쁘게 잘 만드냐고 묻는 질문에 “안 예쁜 옷을 만들어서 장사가 너무 잘 안 되다 보니까 이제 어떻게 만들어야 사람들이 좋아할지 알 거 같다”고 했었다. 이처럼 실패나 좌절의 경험 데이터가 쌓이면 훗날 커다란 자산이 된다.

Q. 가장 큰 기쁨이나 희열을 느꼈던 적은 언제였나

아무래도 첫 번째 쇼를 했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동대문에서 일하던 장돌배기가 컬렉션 무대에 서게 됐으니 얼마나 기뻤겠나. 컬렉션 무대에 서는 건 지금도 매번 다른 희열을 느낀다.

Q. 최범석 디자이너의 옷에 대해 국내와 국외에서의 반응이 어떻게 다른가

해외에서는 좀 더 개성 있고 한마디로 센 옷을 좋아하는 경향이 큰데 반해 한국은 개성 있는 옷은 잘 안 팔린다(웃음). 무난하고 가성비 좋은 옷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맣다.

Q. 지금까지 옷을 만들어 오면서 변함없이 고수하는 철학이 있다면?

가성비. 공급적인 측면에 있어서 가성비 좋은 옷을 만들어야겠다는 신념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지켜오는 철학인 것 같다. 물론 내가 판매하는 옷의 가격이 예전에 비해 오른 것은 사실이나 그만큼 뛰어난 품질로서 보답하려고 한다.

Q. 반대로 예전과 다르게 변화가 생긴 부분이 있다면?

처음 옷이란 걸 디자인하기 시작했을 때는 무작정 예쁜 옷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었고 디자이너가 되고 난 후에는 나름의 콘셉트를 잡고 통일성 있는 옷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서는 옷이라는 매개체로 대중과 소통할 수 있고 메시지를 줄 수 있는 옷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Q. 최근 SNS를 통한 패션시장이 더욱 거대해졌다. 일반인들이 자신의 SNS에서 ‘마켓’이나 ‘공동구매’ 형식으로 옷을 판매하기도 하고 나아가 ‘자체 제작’이라는 이름으로 직접 디자인에 뛰어드는 경우도 허다하다. 어떻게 보면 디자이너라는 영역이 일반인들에게까지 크게 확대되어 그 경계가 다소 모호해졌는데 이러한 현상을 바라보는 시각은?

이제는 패션의 유통 방법이 너무나 많이 달라졌다. 일단은 온라인 중심으로 유통이 이루어지는 게 가장 크고. 이러한 변화 속에서 나를 비롯한 디자이너들이 기존의 방식을 계속 고수한다면 힘들어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에 반해 그들은 어떻게 보면 이러한 변화를 이끈 주도자 역할을 한 셈이다. 오히려 그들이 아마존이고 구글일 수 있다는 이야기다. 자신의 데이터를 가지고 직접 움직였던 사람들이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훨씬 더 선진 유통을 했다고 볼 수 있는 거지.

앞으로는 패션 디자인이라는 경계가 지금보다 더 허물어질 것으로 예상한다. 그런데 이건 비단 패션업계뿐만이 아니라 모든 예술적 장르에 해당하는 말이다. 인터넷에 조금만 검색해봐도 각 분야에 대한 레서피가 모두 나와있기 때문에 누구나 패션 디자이너가 될 수 있고 누구나 화장품을 만들 수 있는 세상이기 때문에 이제는 다른 시각으로 다르게 접근을 해야 한다고 본다.


Q. 옷 이외에 관심있는 분야

매일 하는 것 중에서는 음식과 술에 관심이 많다. 그 둘을 잘 맞는 궁합으로 페어링하는 것도 좋아하고. 또 다른 나라에 여행을 가서 그 나라만의 냄새와 기운을 느끼는 것도 좋아하고 스쿠버다이빙도 즐겨 한다. 작은 스트레스는 술로 풀고 큰 스트레스는 스쿠버다이빙으로 푼다(웃음).

Q. 다가오는 F/W 추천 패션 아이템

컬러풀한 울코트를 입으면 좀 멋스러워 보이지 않을까 싶다. 대개 울코트 하면 블랙이나 그레이 등 무채색 계열의 코트를 많이 입는데 이번 시즌만큼은 조금 더 색깔 있는 코트를 하나쯤 가지고 있으면 유용하게 잘 입을 것 같다. 액세서리는 개인적으로 스카프를 추천한다. 스카프 하나만으로 분위기가 크게 달라진다.

그런데 사실 중요한 점은 이제는 유행을 좇는 시대는 지났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연예인 누가 입은 옷이나 헤어핀 등이 큰 유행을 몰고 다녔었는데 지금처럼 자기 개성을 어필하는 시대가 중요한 때에는 다른 누구의 스타일을 좇는 것보다 자기 스타일을 스스로 찾아 그것에 맞게끔 자기관리를 잘 하는게 오히려 트렌드가 됐다.

Q. 최범석 디자이너의 옷을 가장 훌륭하게 소화해냈던 연예인은 누구?

조인성. 확실히 얼굴의 생김새나 비율이 옷을 정말 훌륭하게 소화하더라. 또 류승범. 둘의 스타일은 정반대인데 각자의 매력대로 옷을 잘 소화했었다.

Q. 앞으로의 계획 혹은 꿈

내가 쓰는 건 모두 내 손으로 만드는 게 목표다. 이미 바디나 헤어 관련 제품, 향수 같은 건 다 내가 만들어서 쓰고 있고. 나아가 디자이너로서의 목표라면 현재 거대해지는 패션산업 시장 뒤에 오히려 더 어려움을 겪는 후배들이 많다. 그들에게 유통 관련으로 힘을 실어주고 이끌어줄 수 있는 선배 역할이 되고 싶다.

Q. 스스로를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어렸을 때부터 주변에서 나에게 “너는 참 잡초 같다”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그게 나를 가장 잘 표현하는 단어가 아닐까 싶다. 밟아도 죽지 않는(웃음).

Q. 다사다난한 과정을 거쳐 지금 이 자리까지 오게 된 인생 선배로서 불투명한 꿈과 진로로 앞날을 고민하는 이 시대 청년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일단 가장 중요한 첫 번째는 자기 자신을 믿고 사랑하는 것.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으면 스스로에 대한 믿음도 가질 수 없다. 그리고 나서 두 번째는 자신이 원하는 목표가 있다면 그것을 이루는 데 아무리 험난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하더라도 절대 포기하지 말 것. 일단은 그 그라운드 안으로 들어가는 게 중요하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백 번을 두드린 문에 백 번을 거절 당했을 때 좌절하지 않고 백한 번째 두드리는 힘을 가지라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Q. 나를 행복하게 하는 세 가지

매일 함께 술을 마실 수 있는 좋은 친구들. 내가 정말 술을 매일 마시는데(웃음), 항상 좋은 사람들과 함께 즐긴다. 그리고 내가 너무 사랑하는 우리 어머니. 또 매일 나갈 수 있는 일터가 있다는 사실에 행복감을 느낀다. 이제 결혼만 하면 될 것 같다(웃음).

Q. 말이 나온 김에 결혼 계획은 언제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4년 후쯤 은퇴를 고려하고 있다고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영원한 은퇴라기 보다는 일시적인 은퇴인데 너무 어렸을 적부터 하나의 직업으로 한 길만 걸어왔기 때문에 조금 다른 삶을 살아보고 싶은 소망이 있다. 개인적으로 스쿠버다이빙을 좋아하기 때문에 딱 세 벌의 옷만 들고 따뜻한 나라에 가서 스쿠버다이빙 샵을 운영하며 히피처럼 살아보고 싶은 거지. 거기서 운명적인 사람을 만난다면 결혼도 하고(웃음). 외딴 곳에서 매일 똑 같은 옷 한 벌만 입은 채로 다이빙 샵을 운영하는 나라도 좋아해주는 여자라면 괜찮은 여자이지 않을까(웃음).

Q. 최범석 디자이너에게 옷이란?

음. 캐릭터 인형인 헬로우 키티 같은 존재랄까? 키티 인형을 보면 입이 없지 않나. 말이 없는 가장 친한 친구. 옷은 나에게 그런 존재다.

에디터: 허젬마
포토: 홍도연
의상: 제너럴아이디어
헤어: 콜라보엑스 새롬 디자이너
메이크업: 콜라보엑스 공주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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