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인터뷰] 하동균, 지금 그리고 우린

2017-05-26 18:09:46

[조원신 기자] 음악이 시작되고, 맑디맑은 침묵 속에서 휘황하게 빛을 내뿜는 달이 피어오른다. 스스로의 몸에 그러모은 듯한 넘치는 빛이 아득히 먼 곳에서 두 귓가를 요요(耀耀)하게 빛내고 있다. 명과 암(暗) 그 언저리에서 사무치게 노래하는, 하동균.

독보적인 음색과 자신만의 색채를 입힌 음악으로 대중은 물론 평단의 마음마저 사로잡은 하동균이 3년여 만에 미니앨범 ‘POLYGON’을 들고 우리 곁으로 찾아왔다. 흩어져 있던 조각들을 섬세하게 쌓아 올려 만들어낸 집합체는 듣는 이를 매료시킨다.

삶과 죽음, 그 사이에서 부유하는 자신의 존재를 찾고자 노래하는 그에게서 쓸쓸하지만 단단하게 뿌리내린 나무가 느껴진다. 결코 넘치지 않는 눈동자의 끝엔 어둠에 몰락하지 않을 빛이 찬연하게 어려 있다. 그렇게 그는 첫 번째 밤을 기다리며 지금 이곳에 피어나고 있었다.

-화보 촬영 소감에 대해 말해주세요.

많지 않은 기횐데, 많이 하지도 않고.(웃음) 또 사진 찍는 걸 썩 선호하지 않아서 조금은 부담이 됐었어요. 카메라가 많은 걸 좋아하지도 않고. 그런데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재밌고 편하게 했던 것 같아요. 워낙에 편하게 해주셔서.

-얼마 만에 화보인가요.

저번에 앨범 나오는 것 때문에 짧게 한 컷 찍었었던 것 말고는...화보요?(웃음) 한 2006년에나 한번 해봤을까.

-일부러 안 잡으시는 것도 있죠?

특별히 요청이 자주 들어오는 건 아니지만 거의 뭐 그렇죠. 워낙에 제가 음악 외적인 일에 관해서 열심히 하는 스타일이 아니라.(웃음) 이걸 해야 한다, 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잘 없으니까.

-이번엔 어떻게 하다가 찍게 된 건가요?

제가 SNS를 잘 하지는 않는데 최근 앨범이 나오고 공연이 잡히면서 그것들에 대해 알릴 방법들을 찾다 보니 이런 콘텐츠들이 많이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오늘과 같은 시간을 만들었는데 생각보다 훨씬 더 좋았어요.

-사실 저도 기자 생활을 하며 동균 씨 화보를 진행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을 아예 못했거든요.

저를요?(웃음)

-워낙에 노출을 안 하시는 걸 알아서(웃음) 뵐 일이 없을 것 같았어요.

(웃음) 앞으로는 조금 더 이런 일들이 진행되는 것도 재밌을 것 같아요.

-오늘 화보 촬영은 세 가지 콘셉트로 진행됐는데 특별히 마음에 들었던 콘셉트가 있었나요?

저는 다 괜찮았던 게 한 번도 입어보지 않았던 옷들이어서.

-근데 너무 다 잘 어울리시더라고요.

(웃음) 제가 저를 보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괜찮았던 것 같아요.

-이제 음악 얘기로 넘어가 볼게요. 어린 시절부터 가수를 꿈꾸셨던 건가요?

어릴 때부터 음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갖고 있었는데 이렇게 대중음악 가수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크지는 않았어요. 고등학교 때부터 밴드를 시작하며 본격적으로 음악 활동을 시작했는데 여기까지 왔네요.

-밴드 활동을 할 때는 어떤 성향에 음악을 했었나요?

옛날 헤비메탈, 화이트 스네이크(White snake)나 미스터 빅(Mr. Big)과 같은 음악을 했었어요.

-밴드 시절 했었던 음악과는 전혀 다른 장르로 데뷔 했는데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고등학교 때 쭉 밴드를 함께 해오던 친구들과 21살 때까지 하다가 활동을 멈추게 되면서 여기저기 연습을 하러 다녔어요. 그러던 중 고등학교 1년 후배였던 이정이 보컬 팀을 준비한다며 합류 제의를 해왔고, 그렇게 함께하게 된 팀이 ‘세븐데이즈(7Dayz)’라는 팀이었어요.

-세븐데이즈가 나왔을 당시 반응이 상당히 좋았던 거로 기억해요.

‘내가 그댈’이라는 노래를 아시는 분들은 조금 있었는데 저희가 딱히 방송을 할 수 있는 여건도 되지 않았고, 데뷔했던 2002년도엔 워낙에 월드컵 열풍이 대단했던 터라 좋은 결과를 얻지는 못했어요. 그때 당시에 나와서 잘된 가수가 휘성이 정도였을 거예요.

-당시 뛰어난 실력으로 입소문이 자자했던 세븐데이즈가 불현듯 해체 소식을 알렸고 많은 분이 아쉬워했어요.

회사의 사정이 좋지 않았고, 다른 회사와의 협업을 통해 공생할 길을 모색하던 중 팀을 나눠야 하는 상황이 왔어요. 저는 나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그래서 나눠진 상태에서 더 쪼개지는 걸 원치 않았고, 정이랑 영준이라는 친구는 각각 솔로로 활동하게 됐어요. 그렇게 남겨진 세 명이 음악을 만들고 연습을 하다가 다른 회사를 만나게 돼 ‘원티드’로 활동하게 됐어요.

-원티드로 데뷔하며 다시 한번 조명받았지만 예기치 못한 안타까운 사고가 있었어요.

지방에서 일정을 하나 마치고 그 다음 스케줄이 다음 날 아침이라 고속도로를 타고 올라오다가 그만.

-사고 당시 심정은 어땠는지.

너무 정신이 없어서 사고 당시만 기억나고 장례식을 치른 뒤 몇 년 정도는 기억이 별로 없어요. 제 머릿속에도 제가 뭘 했었는지 남아있질 않아요.

-그 사고 이후로 여러 가지 면에서 많은 것들이 바뀌었을 것 같아요.

많은 게 변화했고 지금도 바뀌는 중인 것 같아요. 사실 ‘그녀를 사랑해줘요’, ‘나비야’ 이때는 기억이 별로 없어요. 제가 너무 힘들어하고 있으니까 주변 지인들이 뭘 해야 하지 않겠냐는 그런 말들 때문에 다시 시작하게 됐지만 제 의견도 딱히 없었고 그냥 뭐 그렇게 해야 한다니까 해보지 라는 생각으로 했었고. 그때는 너무 정신없이 살았어요.

-당시 솔로 앨범 수록곡인 ‘그녀를 사랑해줘요’가 뜨거운 반응을 얻었는데, 어떤 기분이었나요?

예상도 전혀 못 했고 그게 행복하지도 않았던 것 같아요.

-이후 세븐데이즈&원티드 앨범을 내기도 했어요.

제가 솔로 활동을 하던 중에 다른 멤버들도 앨범을 내길 원했고, 다시 한번 원티드 라는 이름으로 음악을 내는 게 좋은 것 같다고 의견이 모였어요. 이후 이정이라는 친구가 함께하고 싶다고 했고 주변 사람들도 정말 많이 도와주어서 다시 앨범을 낼 수 있게 됐어요.

-그 이후 원티드로의 활동 계획은 있는지.

계속 생각은 하고 있어요. 근데 각자 생계가 있다 보니 함께 활동을 잘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기가 쉽지 않아서 기념적인 느낌이 되거나 공연을 하는 정도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또 기본적으로 좋은 음악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있어서 그게 우선이 돼야 하는데 어쨌든 질 좋은 음원을 만들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니까. 지금은 그런 계획들을 머리로만 구상하고 있어요.

-한 곡 한 곡 만드는데 돈이 꽤 들다 보니 수입 적인 부분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안 할 수는 없죠. 이번에 나온 제 앨범 같은 경우는 뮤직비디오까지 해서 한...오천만원 정도는 나간 거 같아요. 곡이랑 가사를 제가 씀에도 불구하고 그 정도니까.(웃음)

-음악에 대한 욕심이 많으셔서 그런 부분에 대해 아끼지도 않으셨을 것 같아요.

다른 건 아끼더라도 음악적인 부분에 대해선 아끼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주의라 최대한 좋은 환경에서 더 좋게 만드려고 해요. 그래야 저도 후회가 안 남으니까.

-라디오 디제이로 활동하기도 했어요.

1년 정도 했어요. 제 방송이 새벽 4시에 했었는데(웃음) 재밌었어요.

-어떤 계기로 디제이 활동을 하게 됐나요?

갑자기 제의가 왔는데 새벽 4시에 1시간 정도 하는 거라 부담이 덜해서 오디션을 보게 됐고 감사하게도 흔쾌히 시켜주셔서 1년 정도 참 재밌게 했어요. 배울 것도 많았고.

-새벽 시간대라 힘들지는 않았는지.

어차피 그 시간대는 생방송을 못해요. 왜냐면 저뿐만이 아니라 엔지니어분들도 그 시간에 나와 있어야 해서 여건상 녹음으로 진행을 할 수밖에 없었어요. 생방은 기념으로 딱 한 번 했었네요.

-디제이 활동 계획이 또 있나요?

라디오라는 매체를 좋아해요. 디제이가 워낙에 재밌기도 하고. 한편으로 좋은 점이 음악을 굉장히 많이 들을 수 있고. 낮 프로였다면 제 성향에 맞는 노래를 듣긴 어려웠을 것 같은데 새벽 프로는 충분히 제 성향에 맞는 음악을 들을 수 있어서 더더욱 좋았어요. 기회가 한 번 더 오고 제가 시간대가 괜찮다면 다시 해볼 의향이 있어요.

-평소 에픽하이의 타블로와 넬의 김종완과 굉장히 돈독하게 지내는 사이로 알려져 있어요.

블로랑 종완이는 워낙에 옛날부터 알았던 사이예요. 블로 같은 경우는 라디오방송을 같이하게 되며 알게 됐고, 종완이는 과거에 제 매니저를 하셨던 분이 서태지컴퍼니에 있을 때 넬의 매니저였거든요. 그분께서 둘 다 성격이 이상하니까 잘 맞을 거라며 소개를 해줘서 그날 바로 술자리를 갖고 난 뒤부터 친해졌어요. 그 뒤로 셋이서 거의 매일 같이 만나 술을 마시고(웃음) 이상한 짓도 하고 돌아다니다 보니 더더욱 가까워질 수 있었어요. 기본적으로 불만도 잘 통하고 좋아하는 것도 잘 맞아서 지금까지 쭉 그렇게 가고 있어요.

-여전히 술을 마시며 이상한 짓(?)을 하시나요?

이제는 조금 힘들더라고요.(웃음) 어릴 때는 진짜 많이 했어요. 술을 거의 아침까지 마시고서는 등교하는 학생들에게 ‘굳이 학교에 가야 할 이유가 뭐가 있겠니’ 라고 물어보기도 하고.(웃음)

-(웃음)학생들은 뭐라고 대답하던가요?

일단 이상해하죠. 종완이랑 저는 얼굴을 잘 모르지만 블로는 사람들이 다 아는데 셋이 와서 그러니까 의아해하죠. 멋쩍어하기도 하고. 그런 친구도 있었어요. 굳이 갈 필요는 없죠, 라고.(웃음) 아무튼 진짜 재밌게 놀았어요.

-타블로 씨의 결혼 후 뜸해지진 않았나요?

아무래도? 그래도 블로는 혜정 씨가 어느 정도 자유롭게 할 수 있게 해주는 것 같더라고요. 저희 셋이 모인다고 하면 많이 봐주는 것 같아요.

-그 외에 친한 동료 뮤지션들이 있나요.

어린 시절부터 함께 음악 활동을 한 이정이나 거미, 린, 지영이 누나, 길구봉구, 유성은과 친해요. 같은 회사였거든요. 워낙에 가족처럼 잘 지내고 제가 불쌍한 게 있으면 도와주고(웃음) 그런 게 많아서 친해졌죠.

-까마득한 후배였던 아이유에게 ‘구려’라고 말했던 게 화제가 되기도 했어요. 스승과 제자 사이 같은 거였던 건가요?

제가 뭐 딱히 가르치기보다는 그 친구가 중학교 2학년이었을 때 처음 보게 된 거니까. 조금 밝지만은 않은 친구였어요. 생각도 많고, 그런 친구였는데 저뿐만이 아니라 같이 곡 쓰고 제작하는 분들이랑 같이 있었던 작업실에 그 친구도 함께 있었거든요. 그 분들께서 그 친구의 발전을 위해서 절 보고 네가 노래하는 선배니까 쓴소리 한마디 해줘야 하지 않겠냐고 얘기하며 시켜서 총대를 메게 된 거예요. 그 친구는 제가 했다고 확실하게 생각이 들었겠죠. 결국에 말은 제가 했으니까. 뭐 그랬었습니다.(웃음)

-지금은 정말 훌륭하게 성장했어요.

너무 잘하죠.

-이번 앨범 타이틀곡의 코러스를 부탁하기도 하셨는데, 피처링은 생각 안 해보셨나요?

제가 이번에 발표한 앨범의 타이틀곡에서 코러스가 상당히 비중 있는 부분이었는데 모르는 사람한테 부탁하는 건 제 성격상 안 되고, 아는 사람한테 부탁하기에는 그 친구가 이 노래랑 가장 잘 맞을 거 같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부탁했는데 흔쾌히 응해주었죠. 사실 이 친구가 이제는 ‘대 아이유’인데(웃음) 코러스라고 쓰는 게 미안하기도 하고, 이 친구가 작아 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With 아이유’ 이렇게 쓸까도 생각했는데 그걸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겠더라고요. 이 친구를 이용해서 홍보하려는 식으로 보일까 싶어서 그건 과감히 안 하기로 했고, 아이유도 괜찮다고 얘기해서 크레딧에만 넣게 됐어요.

-근데 이게 적지 않은 돈과 심혈을 기울여 만든 앨범이기에 추후를 위해서 수익적인 부분을 생각해서 어느정도 흥행을 보장하는 피처링으로 갈 법도 한데,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것 같아요.

어린 친구를 이용한다는 욕을 먹기는 싫어가지고.(웃음)

-근데 또 곡의 완성도가 높고 좋았기에 괜찮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조심스레 해봐요.

사실 저는 아직 좀 그렇더라고요. 좋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기도 하고. 그리고 또 그 친구가 도움을 많이 줘서 충분히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요. 사실 관계 때문에 해준 거죠, 뭐.(웃음)

-그렇다면 추후 함께 협업을 생각해본 뮤지션이 있나요?

언젠가는 블로랑 종완이랑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은 있어요. 근데 그건 서로의 의견이 맞아야 하는 부분이라 정확하게 말씀은 못 드리겠네요. 일단 저는 제가 좀 더 확실하게 어떤 경지에 오르게 되면 그때 해보고 싶어요. 사실 잘하는 사람은 많고, 음악적으로 부러운 사람들도 아직 많거든요. 그래서 제가 그들에게 조금 더 음악적으로 동등한 입장이 되었을 때 부탁해보고 싶지, 아직은 스스로가 부족하다고 느껴요.

-주목하는 뮤지션은 있나요?

일단 뭐 제가 아는 사람들은 다 주목하고 있고.(웃음) 그 외엔 혁오가 곡도 좋고 잘하더라고요. 또 요즘은 힙합이 대세고 그 친구들이 워낙에 음악을 잘해서 그쪽 음악도 즐겨 듣고. 또 밴드 음악, 인디 앨범도 꼭 한 번씩 들어봐요.

-인디밴드 중에 잘한다고 느껴졌던 팀도 있었나요?

‘아이엠낫’이라는 밴드가 잘한다고 느껴왔는데 이번에 나온 앨범 역시 좋았어요.


-‘Mark’ 앨범을 발표하며 동균 씨도 음악적인 색깔이 많이 변했어요.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원래 그런 음악을 주로 들어요. 밴드도 했었고 워낙에 록음악을 좋아했으니까. 밴드를 접은 뒤로 세븐데이즈-원티드를 하면서 흑인음악의 매력에 빠졌던 적도 있었지만 결국에는 오아시스와 같은 록밴드의 음악을 듣고 ‘역시 이게 제일 좋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밴드를 따로 꾸려보고 싶은 생각은 없나요?

지금 제 앨범도 그렇고 공연까지 저랑 같이 하는 팀이 있어요. 그 친구들하고만 하고 있어서 거의 밴드처럼 움직이고 있고요. 제가 행사를 잘하지 않는 이유 중에 하나도 MR로는 거의 공연을 안 하기 때문이에요. 하더라도 어쿠스틱 셋 내지는 밴드가 라이브로 공연할 수 있는 걸 지향하기 때문에 저는 그 친구들과 밴드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음악을 하고 있어요.

-팀원들도 함께 하다 보면 자기 음악에 대한 욕심이 생길 것 같아요.

그래서 잘해주기도 하고, 편곡에 대한 의견도 많이 반영해요. 또 세션 비를 정확히 지급하죠.(웃음) 사실 저도 제 밴드를 하고 싶지만, 그 친구들에게 딱 하자고 할 수는 없겠더라고요. 이미 저희 팀 말고도 일을 열심히 하는 친구들이라서 제 작업에만 몰두하며 시간을 다 쏟기에는 그 친구들이 조금 더 다른 음악을 해보면서 늘 수 있는 것도 있고, 살아가려면 어쩔 수 없이 수입 적인 부분도 생각해야 되는데 그런 면이 줄어들 수밖에 없으니까.

-음악을 하며 롤모델 같은 것도 있었나요?

그냥 똑같아요. 오아시스처럼 살고 싶고, 록스타처럼 살고 싶고, 늘 그런 거죠. 특별히 롤모델이라고 할 건 없는 거 같아요. 항상 멋있는 사람은 많고, 좋은 음악도 많고, 들을 때마다 반하는 음악들 또한 많아서 매 순간 그 음악을 만들어낸 사람들이 본보기처럼 느껴질 때가 많아요.

-동균 씨의 노래를 듣다 보면 다양한 뮤지션들이 보여주는 여러 가지 감성들이 느껴지는 것 같아요.

많이 듣고 접하다 보니 아무래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특히 최근에 오아시스(Oasis) 다큐멘터리 영화 ‘슈퍼소닉’을 너무 재밌게 봤어요. 정말 최고였어요. 이렇게 오아시스가 됐었구나, 하며.

-저도 정말 재밌게 봤어요. 특히 밴드를 시작하는 순간부터 마지막까지 비디오로 기록을 남긴 게 신기하더라고요.

외국은 홈비디오 문화가 있어서 그게 가능한 것 같더라고요. 사실 우리나라에서 하기엔 문화가 매우 다르니까 앞으로도 그런 결과물을 만들어낸다는 게 쉽지는 않을 것 같아요. 조용필 선생님이나 이런 대가들께서는 충분히 그런 다큐멘터리가 나와도 좋겠지만, 그와 같이 기록해놓은 게 많지는 않을 것 같아서.

-어느 정도는 그와 일맥상통하는 부분 중에 하나라고 생각하는데, 참 아쉬운 부분 중의 하나가 한국의 음악 환경인 것 같아요. 만약 영국이라던가 더 여건이 좋은 나라에서 음악을 했더라면 더, 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을 것 같아요.

한국에서 태어난 게 어떤 한편으론 참 다행이라고 생각하지만 다른 많은 부분에서는 아, 완전히 망하더라도 한국에서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더 나을 수도 있었겠다, 는 생각을 할 때가 많아요. 그건 아마 저뿐만이 아니라 자신의 음악을 만들어 가는 모든 분이 생각하는 그런 부분일 거예요.

-해외 진출에 대한 생각은 안 해보셨나요?

생각을 많이 했었고, 딱히 기회가 없었던 것뿐이지 사실 너무 하고 싶죠. 그런데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부분은 아니니까. 긴 호흡을 갖고 천천히 해나가려고 해요.

-드라마 OST를 부르기도 했어요.

OST 가창 제의가 종종 들어오긴 하는데 저는 제가 쓴 곡을 부르지 않으면 쉽지 않더라고요. 곡을 쓰고 가사를 쓰기 시작한 것도 다른 분들이 써주신 곡을 부르면 그 본연의 감정에 대해 100% 공감하기가 어려웠고, 제 성향에 맞지 않는 부분이 존재할 때가 빈번해서 직접 만들어 불러야겠다는 생각 때문이었어요. OST 같은 경우도 제가 써놓은 곡 중에서 마음에 들어 하셔서 하게 된 거였어요. 대신 편곡에 대해 어느 정도는 그쪽에 맞춰서 손을 보는 경우는 있어요. 두 번째 했던 경우는 그런 경우였고, 드라마 ‘굿닥터’ OST였던 ‘좋아 보여’ 같은 경우엔 모든 부분에 대해서 제 생각을 담았어요. 그게 싫으면 안 하겠다는 식이었죠.(웃음)

-확실히 그래서 그런지 ‘좋아 보여’ 같은 경우 더더욱 하동균의 색깔이 묻어났던 것 같아요. 근데 사실 듣는 이들도 그렇고 곡의 완성도 면에서도 그게 더 좋지 않나 생각해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는데 모두의 입장이 같을 순 없는 것 같더라고요.

-이전에는 OST 하면 어느 정도 정형화된 느낌이 있었는데 그래도 요즘은 조금 더 트렌디하게 가는 경우도 많더라고요. 어떤 작품을 보며 OST에 참여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적은 있으셨나요?

도깨비?(웃음) 도깨비 재밌었어요. 드라마를 별로 즐겨 보는 편은 아닌데 저는 아직도 ‘그들이 사는 세상’이라는 드라마를 정말 좋아해요. 그런 드라마가 다시 나온다면 꼭 해보고 싶어요. 저는 그 드라마를 보며 영화 ‘클로저(Closer)’를 봤을 때 느꼈었던 것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어요. 극 현실에 가까운, 그런 느낌이 너무 좋았거든요. 혹은 영화 ‘이터널 선샤인(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과 같이 스토리도 영상도 완벽하고 심지어 그 안에 들어있는 음악 자체도 완벽한 그런.

-자신만의 색깔을 담은 OST를 만들어내는 뮤지션을 떠올리자면 이승열 씨를 빼놓을 수가 없는 것 같아요. 또 좋아하는 뮤지션이 이승열 씨라고 밝히기도 했었는데 여전히 그런가요?

정말 좋아해요. 유앤미 블루(U&me blue) 때부터 지금까지 나온 앨범 모두 좋아해요. ‘기다림’과 같이 티피컬(typical)한 음악들도 굉장히 좋고요. 사실 너무 특이하시잖아요. 진짜 보노 같아요.(웃음) *보노(Bono)- "역사상 가장 위대한 아티스트 100인"에 이름을 올린 세계적인 록밴드 ‘U2’의 보컬

-그런 뮤지션들이 국내에서 더 크게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이 가슴 아픈 것 같아요.

그렇죠, 그런 분들이 외국에서 태어나 음악 활동을 했다면 소위 록스타와 같이 대우 받을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하기도 해요.

-의외의 예능출연도 있었어요. 당시에도 힘든 시기였을 때였는데.

어렸을 때. 그렇죠, ‘그녀를 사랑해줘요’ 활동할 때였으니까. 그때 생긴 습관이 있어요. 스트레스를 받거나 어려운 일이 있으면 그냥 멍하니 시간을 허비해버려요. ‘그래 어차피 시간은 지나가지, 다 지나갈 거야’ 이 생각만 계속 머릿속에. 조금 되게 어떻게 보면 안 좋은 기억들로 남아있어요.

-‘불후의 명곡’ 같은 경우 출연을 마다하다가 ‘들국화 편’에 출연하며 화제가 되기도 했어요. 특히 ‘들국화 편’에서 불렀던 곡들의 동영상 중에 가장 조회 수가 높았다고.

모르겠어요. 저는 한 번 하고 기록에 남는 걸 다시 보진 않아요. 약간 기록에 남기는 것도 싫어하고.(웃음) 민망해서. 들국화는 제가 존경하는 뮤지션이기도 해 출연을 결정짓게 됐어요. 들국화의 옛 앨범이나 곡을 들으면 비틀즈(The Beatles) 같기도 하고 도어즈(The Doors) 같기도 하고. 그런 색깔은 유일무이한 것 같아요. 진짜 한국에서는 다신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너무 좋아요.

-이후 ‘유재하 편’에 출연하여 우승하기도 했어요.

제일 마지막에 해서라고 생각해요.(웃음) 사실 지고 이기고는 큰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나는 가수다’ 출연 또한 커다란 이슈가 됐는데.

죽어도 안 하려고 했었던 건데.

-어떤 이유에서였나요?

일단 방송에 나가서 노래하는 걸 너무 싫어하고. 그리고 사실 그런 프로그램, ‘불후의 명곡’이나 ‘나가수’나 너무 싫어했던 건, 왜 남의 노래를 불러야 되지? 라는 생각이 많았거든요. 또 누가 이기고 누가 지고를 정해야 했던 것들까지. 일단 여러 가지로 다 싫었었어요. 그럼에도 하게 된 건, 두 번 정도 제 앨범에 있는 노래를 할 수 있게 해준다고 하셨고, 제가 함께하는 밴드 팀을 데리고 들어가겠다는 것과 선곡, 편곡을 웬만하면 건드리지 않는다는 것까지 조건으로 걸었을 때 그러겠다고 해서 하게 됐어요. 감사하게도 잘 지켜주셨어요.

-‘나가수’에서 자신의 곡을 불렀는데, 효과는 있었나요?

효과가 있었죠. 한 번도 방송에서 부른 적이 없었던 노래들이어서 더더욱 효과가 없었다고 얘기할 순 없는 것 같아요.

-결과적으론 ‘나가수’ 출연이 괜찮았던 건가요?

‘런(Run)’에 대해서는 여전히 모르시는 분들이 많지만, 그나마 ‘프롬 마크(From Mark)’는 어느 정도 아시는 분들이 조금 생기셨으니까. 그런 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죠. 근데 나가수 한다고 돈이 되지는 않아요.(웃음)

-행사가 많이 들어왔을 것 같은데, 잘 안 가셨죠?

네.(웃음) 불후나 나가수를 하면 편곡연주 MR을 따로 받는다고 하더라고요. 근데 저는 MR을 따로 받지를 않아서 없어요.(웃음)

-‘EBS 스페이스 공감’ 출연은 괜찮았나요?

공감은 해외뮤지션들이나 다양하고 독보적인 색채를 지닌 국내 뮤지션들이 많이 나와서 굉장히 좋아하는 프로였어요. 그래서 꼭 한 번은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굉장히 재밌었어요.

-음악 페스티벌 출연 계획은 없으신가요?

서울재즈페스티벌 외에 3개 정도 섰던 것 같은데 아직 지산이나 펜타와 같은 록 페스티벌은 해본 적이 없어요. 저야 출연하게 된다면 너무 좋죠.

-따로 섭외가 없으셔서 안 나가셨던 건가요?

그렇죠. 사실 저를 부르기는 애매하죠. 저도 그럴 거라 생각을 하고 있어서 제 음악이 조금 더 바뀌었다, 변했다는 걸 알리는 게 더 우선이라고 생각해요.

-근데 또 요즘에는 록 페스티벌에서 힙합 하시는 분들이 나오는 경우도 빈번하더라고요.

그게 저는 조금 아쉽더라고요. 뭐랄까, 헤드라이너가 조금 약해지고 중간에 힙합 하시는 분들의 벨류가 더 강해져서 그분들이 헤드라이너가 되는. 저는 ‘록빠’로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그런 건 지켜주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런 음악이 나쁘다는 측면은 아니고요. 저 또한 제 음악이 밴드적인 성향이 짙어졌지만 변화된 음악에 대해 알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나가게 된다면 그와 같이 보일 수도 있을 거라 생각돼서 더 조심스러운 것 같아요.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출연해 타이틀곡의 제목을 ‘아이유’로 할까도 생각했었다는 말은 농담이었죠?

아휴, 전혀 생각 없습니다.(웃음)

-이번 ‘유스케’ 출연에 대한 네티즌들의 반응 중에 눈길을 끌었던 건 ‘이정재가 노래도 잘하네’였어요. 그러고서 보니 이정재 씨가 보이더라고요.

(웃음) 분명 많지 않은 제 팬 중에 누군가이지 않을까. 일단 너무 감사드립니다. 제가 어릴 적부터 이정재 씨의 팬이어서 더 기분이 좋네요. 초코바 광고 때부터 팬이었거든요.

-평소 즐겨보는 예능프로그램이 있나요?

TV를 늘 틀어놓고 있는데 보지는 않아요. 그래서 무슨 채널의 무슨 프로라는 걸 거의 몰라요. 너무 목소리가 많고 화면이 많이 변하면 올리브 TV를 틀어놓는 편이에요. 혹은 다큐멘터리가 나오는 채널이라던가.

-출연해보고 싶은 예능 프로는 없겠어요.

사실 무섭죠.

-입장에 따라 다르겠지만, 한편으론 안타까운 부분일 수 있겠는데, 가수들이 자신의 앨범 홍보를 위해 예능에 나가고, 나가야만 홍보가 되는 경우가 있어요. 그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분명히 그게 알리기엔 가장 좋은 방법이긴 하겠죠. 근데 그게 잘못됐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쪽에 재주가 있는 사람이면 충분히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그 좋은 재주를 굳이 감추고 썩힐 필요는 없으니까. 근데 한편으론 저처럼 그런 쪽에 재주가 없는 사람은 굳이 스트레스받아가며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라. 단순히 저로서는 예능프로를 위해서 제가 따로 개인기를 준비한다거나 연습하는 것 자체가 조금 웃기기도 하고.(웃음)

-뮤지션을 존중해주는 ‘무도가요제’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요?

좋죠. 뭐 그런데 그건 섭외가 들어와야 할 수 있는 부분이니까. 사실 ‘라디오스타’ 같은 것도 겁나요. 무슨 얘기를 들었을 때 내가 어떻게 얘기를 해야 할 지도 모르겠고.

-무도가요제를 하게 된다면 함께 합을 맞춰보고 싶은 무도 멤버가 있나요?

하하 형이랑 친해서 하하 형. 함께 공익 근무를 했거든요.(웃음)


-음악 얘기로 넘어가서, 새 앨범에 관해서 소개 부탁드릴게요.

미니앨범이고, 다섯 곡이 들어있고, 제가 지속적으로 음악 성향이 바뀌면서 바뀌는 것으로 계속 가는 중인 것 같고. 좀 더 공연 위주로 활동해야겠다고 생각을 하면서 비트 있는 곡도 꼭 1, 2개 정도는 만들어 넣으려고 노력하는 중이고, 그런 선상에서 나온 앨범이고. 가사 쓰는데 굉장히 시간이 오래 걸리는 편이라 조금 더 늦어졌던 거고. 항상 만들어놓고 다 마음에 들지는 않아요. 그래도 그 전 앨범과 비교했을 때 수록곡들에 대한 색깔이 달라져서 그 부분에서는 조금 더 저 스스로 발전했다고 볼 수 있는 앨범이에요.

-보통 곡은 어떻게 쓰시나요?

TV를 틀어놓고 계속 기타를 치고 있어요.(웃음) 계속 기타를 치면서 멜로디를 쓰고. 이렇게 수도 없이 많은 걸 써놓고 난 뒤에 기억나는 걸 끄집어내는 편이에요. 가사를 나중에 쓰는 편이고, 안 그런 것도 있어요. 가사랑 같이 쓰는 것도 있고. 이건 이런 편곡으로 가면 되겠다는 생각을 머릿속에 넣고 가는 거니까. 그건 편곡자랑 얘기하며 상의하고. 또 사실 제 곡들을 보면 사랑 얘기 같지만 사랑 얘기가 아닌 부분들이 되게 많아요. 사랑이라고 들리게 써놓기는 했는데 전 대통령 탄핵 당시 쓴 가사도 있고.(웃음)

-그 노래가 어떤 곡인가요?

‘BLOOMS’라는 곡이에요. 그게 그런 건데, 지금 이 계절이 지나가며 우리는 다 무너져 내리고 부서져 버렸지만 그대로 죽을 거라는 게 아닌 떨어진 곳에서 피어나고, 다시 시작할 거라는 가사예요. 사실 그때 굉장히 충격 많이 받았거든요. 친구들이랑 요즘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하는 얘기가 진짜 한국에 태어나서 전쟁만 겪어 보면 다 겪어본 것 같겠다는 얘기를 해요.

-다 믿지 못하겠는 기분을 느꼈어요.

이게 탄핵이 됐다고 기분이 막 좋지도 않았어요. 되게 이상한 기분이에요.

-이런다고 바뀔 수 있을까, 라는 불신이 생기고.

그런 의심증도 생기고.

-타이틀곡은 어떻게 쓰게 된 건가요?.

아주 예전에 써둔 노랜데, 제가 항상 가진 가장 큰 고민에서 비롯된 곡이에요. 지금 내가 어느 정도일까, 삶의 어느 정도 쯤에 위치한 걸까, 음악적으로도 그렇고 삶을 살아가면서도 그렇고. 삶과 죽음 사이에서 내가 어느 정도쯤에 있을까, 항상 그런 유의 고민이 있어요. 어떻게 보면 굉장히 유치할 수 있지만 우리는 살아가는 건지 죽어가는 건지를 사실 정확히 얘기할 순 없잖아요. 그런 게 항상 머릿속에 많아요. 그래서 그런지 가사를 쓰다 보면 지금은 어디로- 과연 그때는 달랐을까- 항상 이렇게 끝나는 가사들이 많아요. 그 고민이 아직도 많은데 게다가 괴팍한 단어들을 써버리면 애매해질 것 같아서 듣기에 낯설지 않도록 조금씩 풀어내는 거죠.

-그러면 ‘런’이나 ‘프롬 마크’의 본질 또한 그러한 삶과 죽음 사이에서 느껴지는 고민에서 비롯된 건가요?

내가 어딘지 몰라서. 저는 늘 고민하는 게 제 감정이 이렇다고 생각하거든요. 예를 들어서 위아래가 완전히 막힌 물통에 물이 들어있고 중간에 왔다 갔다 계속 떠다니는 것 같다랄까, 어딘가에 부딪히고 올라갔다가 내려갔다가 치이고, 정확히 어디 있는지를 모르겠는, 그런 순간이 제일 답답하더라고요. 항상 가사가 그렇게 되는 거 같아요. 그러니까 그게 예를 들어서 사랑이나 이별에 관해서 쓰더라도 결국엔 생각이 그쪽으로 가게 돼요. 그래도 타이틀곡은 어느 정도 어렵지 않게 풀려는 생각을 하고 곡을 써요.

-수많은 곡 중 가장 아끼는 곡은 뭔가요?

‘프롬 마크’. 제게는 완전히 돌아서게 된 첫 곡이라. 그리고 제일 좋아해요.

-‘마크(Mark)’에 대한 존재가 따로 존재할 것이다, 라는 유의 해석도 있는데.

되게 단순하게 단어 그대로 Mark, 흔적이에요. 흔적으로부터라는. 그것 때문에 별명은 하마크가 됐죠. 김종완 때문에. 맨날 하마크, 하마크 불러서.

-반면에 아쉬운 곡도 있나요?

근데 사실 ‘프롬 마크’도 조금 아쉽고. 모든 곡이 조금씩은 아쉽죠. 나중에 들어봤을 때 아 여기를 이렇게 하면 더 좋았겠구나, 란 생각이 들죠. 충분히 열심히 하려고 하는데 가열 차게 하다가도 항상 ‘아, 이제 그만하고 싶다’라는 순간이 꼭 오더라고요. 그것 때문에 넘어가게 되는 경우가 생기는데 나중에 그때 안 들리던 결함 같은 것들이 꼭 들리니까.(웃음)

-사실 음악 같은 경우엔 정답이 따로 없기도 하니까(웃음) 이렇게 해놓고 저렇게 해보다가도 하다 보면 뭐가 좋은 건지 사실 헷갈리고.

정확히 딱 이렇게, 가 쉽지 않죠.

-또 계속 듣다 보면 그게 그건 거 같기도 하고.

괜찮은 것 같기도 하고.

-지나고 나면 이제...

분명히 괜찮았던 것 같아, 라고 생각했던 부분이 다 틀리지.(일동 웃음)

-타 가수의 노래 중에 아끼거나 좋아하는 곡이 있나요?

친분을 떠나 워낙에 넬과 에픽하이 팬이어서 그들의 곡 중에서 어떤 노래를 꼽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그 외엔 강승원 선배님의 ‘나는 지금’. 그 노래 되게 좋아해요. 약간 이게 한 80, 90 된 작가나 배우가 마치 삶에 관해서 얘기하는 것 같은 느낌이에요.

-너무 좋죠. 그래서 더 잘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곡인데 많이 알려지지 않은 것 같아 참 아쉬워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정말 좋은 곡이에요. 정말 그 감성은 따라갈 수 없는.

-삶에 있어 ‘사랑’이라는 부분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예전에는 세상에 사랑이란 없다고, 다소 부정적으로 생각했거든요.(웃음) 사랑이라는 단어가 존재하지만, 그 사랑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우리는 너무 과소평가하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세상에 진짜 사랑이라는 건 없다고 생각했고. 근데 어떤 계기가 있어서도 아니고 어느 순간 내가 되게 바보같이 생각했구나,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 어떤 순간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어리석은 일이라고 느껴졌어요. 지금은 아주 중요한 무언가 중에 한 부분이자 세상에 굉장히 많이 존재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결혼 생각이 있,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없어요.

-1도,

(단호하게) 0.

-(웃음)그걸 만나시는 분들에게도,

다 얘기하죠.

-보통 반응이 어때요?

다 똑같죠 뭐.(웃음) 그게 항상 고민이기도 해요. 연애할 때 분명 결혼 생각이 없다고 얘기를 하는데, 그 생각을 하고 내가 이 친구랑 연애를 하는 게 맞는 걸까라는 생각을 해요. 그래도 솔직하게 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좋아하면 좋아하는 데로,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서 견디지 못하면 견디지 못한 대로. 그걸 어떻게 할 수 있는 건 없는 것 같아요.

-사랑하니까 결혼도 할 수 있는 거지, 결혼하기 위해 사랑을 하는 건 아니니까.

그렇죠.

-하지만 어느 정도 나이가 차다 보면 우리 사회에서는 흔히 ‘적령기’라는 걸 정해버리고, 그런 결혼 시기에 대해 중요시하는 경향이 있으니까.

결혼할 때가 됐잖아, 라고 하는데 결혼에 때가 어디 있어, 라고 생각해요. 사람을 좋아하는데 때가 있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 어떤 단계를 지나감에 있어서 필요한 게 결혼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게 때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사실 너무 행복하지 않은 세상인 거죠.

-그런 게 살아가면서 허망해질 때가 있는 것 같아요. 좋아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데 무언가의 관계에 얽매여서 계속 단정 짓고 규정지으려 하는.

어떤 관계가 돼야 하고, 분명 어떤 관계가 됐을 때 좀 더 깊어질 수 있는 건 누구나 다 가진 생각이니까. 하지만 되니까 하는 거지 일부러 시작하려고 하는 건 어딘가 부자연스러운 것 같아요. 이를테면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 싶어 하는, 관계를 증명받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고, 그 말을 굉장히 아끼는, 자연스럽게 하길 바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게 서로 굉장히 곤욕스러운 상태거든요. 그걸 원하고 바라는 것 자체가 자신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는 거고, 또 자연스럽게 느껴지지 않는 상태에서 상대가 듣고 싶어 하니 해준다는 것 자체가 그 사람을 더 무시하는 행위가 될 수도 있는 거고. 쉽지 않아요.

-결혼 생각이 없다고 했지만, 언젠가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 올 수도 있을까요?

육십이나 칠십 넘어서? 그때 마침 같이 늙어가는 사람이 있으면.

-특별히 이상형이 있나요?

특별히 있지는 않아요. 그저 어색하지 않은 사람이면 충분한 것 같아요. 내가 그 사람을 볼 때 어색하지 않고, 그 사람이 뭔가를 하고 있을 때 그 모습이 어색해 보이지 않을 때 제 마음이 가는 것 같아요.

-콘서트 얘기로 넘어가 볼게요. 6월 3~4일 양일간 콘서트가 열리는데요, 타이틀이 [밤:그 첫 번째]예요. 그 이후로도 두 번째, 세 번째 쭉 이어갈 계획인 건가요?

그럴 생각으로 기획했어요. 이번 공연이 조금 괜찮으면 두 번째가 조금 더 수월하겠죠? 공연 자체는 열심히 준비하고 있어요. 또 제작사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며 그런 부분에 책임감을 느끼고 뭔가를 계속하고 있기는 해요. 사실 걱정은 하지 않아요.

-콘서트를 앞두고 긴장되거나 하지는 않나요?

일주일 전쯤 되면 조금씩. 그때는 술도 마시지 않으니까. 일주일 전부터는 술을 안 하는 게 습관처럼 박혀있어서.

-애주가로서 쉽지 않을 것 같아요.

너무 어렵죠. 그때부터 긴장이 되는데 연습하는 기간에는 긴장될 게 없어요. 연주자들이랑 연주하는 건 자체가 너무나도 행복하니까.

-연습을 많이 하시는 거로 알려져 있는데 연습 방법이 궁금해요.

보통 머리 안 쓰고 하면 안 늘어요. 뭐든 다 똑같은 거 같아요. 음악도 마찬가지고, 물론 제가 다른 걸 해보지는 않았지만, 음악 같은 경우에는 일단 음악을 많이 들어서 잘 들리면 그다음부터는 수월해지고 조금 더 옳은 길로 갈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렇지 않고서는 헤맬 수밖에 없고. 좋은 걸 알고 나쁜 걸 알아야 연습을 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때는 완전히 다른 연습이 돼요. 이제는 카피도 잘 안 하고 곡을 써야 하니까 한꺼번에 해요. 기타 치면서 노래하고, 안 되는 부분은 문제점을 찾아서 될 때까지 계속하고. 그렇게 꾸준히. 시간이 없어도 이틀은 안 넘기는 것 같아요. 시간을 길게 갖고 조금씩 하거나 짧게 집중해서 빡, 하거나. 그런 식이에요.

-콘서트 이후 계획이 있나요.

아직은 없어요. 아마 음악 작업은 계속할 테고, 이후에 이런 기회가 또 있으면 하고, TV프로라도 제가 인기가요 같은 건 못할 거 같고. 저 말고도 저만큼 나이 든 사람이 거기서 노래하는 건 붕 떠보여서(웃음) 그런 건 좀 안 할 거고. 기회가 있으면 스케치북이나 공감과 같이 노래하는 프로를 해볼 수는 있겠죠. 그 이후에 계획은 잡아놓지 않았어요.

-올해 목표가 있나요?

이번 공연 잘 마무리하고 올해 안에 미니앨범을 하나 정도 더 내려고 생각하고 있어요.

-이제는 슬슬 숙련된 음악인들이 풍기는 아우라가 느껴지는 것 같아요.

어우, 한참 더 해야 해요.(웃음)

-끝으로 어떤 사람, 어떤 가수로 남고 싶은지.

자연스럽게 나이를 먹어가면서 나 자신의 가치관이 확고하고 명확해져서 그것들이 반영될 수 있는 음악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고, 소망으로 따지자면 늙어도 젊은 사람처럼 음악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고, 정말 음악은 오래 하고 싶어요. 슬럼프가 긴 편이라 그것들이 찾아오면 음악을 관두고 다른 걸 해볼까, 라는 생각을 할 때도 있는데, 그럴 때마다 해보고 싶은 건 많지만 내가 열심히 할 자신이 없고, 분명 내가 열심히 하지 않을 거라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사실 다른 거에 대한 답도 없어요.(웃음) 꾸준히 돈을 벌어야겠다는 목적만 없다면, 지금까지도 없었으니까 앞으로도 없을 거라고 자부할 수 있고. 그런 목적과 욕심만 줄이면 충분히 음악을 꾸준히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해나가면서 발전해 나가는 사람, 그런 음악 하는 사람, 음악 하는 사람이라고 나도 그렇고 누군가도 나에 대해 자랑스럽게 얘기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면 좋겠어요.

기획 진행: 조원신
포토: 차케이
영상 촬영, 편집: 이재엽
의상: 소윙바운더리스, 암위
시계: 잉거솔
선글라스: 룩옵티컬
헤어: 루미오뷰티하우스 헤어 원장 우제
메이크업: 루미오뷰티하우스 메이크업 원장 승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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